혼돈의 순환의 디자이너 후기를 쓸 때가 오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도전 모드보다도 훨씬 이전에, 거의 5년 전에 개발을 시작했었으니까요. 여러 과정을 거치고 버전도 십 수 번에 거쳐왔지만, 저희가 <아컴파일즈> 커뮤니티와 공식 한국어화 작업까지 맡고 있는데다 일신상의 이유 등과 겹쳐서 바빠질 때마다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기에 이제야 베타 버전의 형태로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래 저희는 이 캠페인을 굉장히 자유로운 구조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혹시 <레드 얼럿 3>을 아시는지요? 특정 지역 선택지가 존재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해 가며 진행하는 형식을 굉장히 좋아했기에, 원래 모델은 그러한 자유 선택지 형태로 구성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후에 진홍색 열쇠에서 보여준 시스템과 비슷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당시에는 이를 구현할 방법이 부족했고, 모여서 만들다 보니 일반적인 캠페인 구조로 회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또 바뀌면서 혼돈의 순환은 일반적인 캠페인 구조도 처음 구상했던 구조도 아닌 다른 구조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3개짜리 소캠페인이 순서를 바꿔서 도입부와 대단원 사이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죠. 물론 베타 버전에서 소캠페인을 하나만 선보이게 된 것은 아쉽지만,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선보이기 위한 고육지책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원래는 다른 대륙 캠페인도 더 만들고 내고 싶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캠페인 역시 구상 단계를 넘어선 상태였고요.
타락 시스템 이야기도 잠깐 해 보겠습니다. <꿈을 먹는 자>에서 이미 출현했던 이계 신인 “니알라토텝”은 너무나 매력적이었지만, 반쪽짜리 캠페인에서만 등장한 셈이니 조금 더 조명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연장된 시스템이 타락이었죠. <엘드리치 호러> 니알라토텝의 가면 확장에서처럼, 타락을 뿌리고 다니는 게 니알라토텝의 본성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받을수록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어떤 선택적인 수치 같은 개념으로 만들었다가, 만족스럽지 않아 시스템을 몇 번 갈아엎은 결과물이 현재의 타락 시스템입니다. 업보를 계속해서 청산하게 되는 일종의 자원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현재 상태가 꽤 만족스럽습니다만, 캠페인을 마친 지금은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네요. 부디 흥미로운 선택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번 캠페인에서 가장 먼저 디자인된 카드는 ‘니알라토텝의 사도’이고, 최초 디자인으로부터 거의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 다른 곳에서 파멸을 사주하는 ‘니알라토텝의 사도’와 맞서는 일은 어떠셨나요? “검은 모래의 속삭임”이 바로 ‘니알라토텝의 사도’와 잘 어울리도록 의도적으로 제작한 시나리오입니다. 이 시나리오도 큰 틀이 완성된 건 꽤나 오래 전이고, 조우 카드만 몇 번 갈아엎었던 것 같습니다. <엘드리치 호러>의 소문과 미스터리 카드를 모티브로 만들었는데 나름대로 괜찮게 구현된 것 같아서 만족합니다.